엄마가 취미를 가져야 하는 교육학적 이유
Life #1 나를 돌보는 취미
이 글에서는 ‘주양육자’를 편의상 ‘엄마’라고 일부 표현했지만, 실제 주양육자는 엄마일 수도, 아빠일 수도,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애쓰는 모든 주양육자님들, 우리 존재 화이팅👊🏻
출산 후 아기를 품에 안고 “내가 엄마라니?”를 몇 번이고 되뇌다 보면, 어느새 ‘엄마’라는 이름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립니다. 주변에서는 입을 모아 말합니다. “엄마도 엄마 자신을 챙겨야 해.”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다짐하면서도 아기를 위한 시간, 가정을 위한 시간이 늘 앞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특히 주양육자는 자신의 ‘자기표현’이나 ‘창의적 활동’을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희생합니다. ‘아기를 키우는데 내 취미가 무슨 소용이야’라며 취미 활동을 미루는 현상은 단순한 여가 부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개인의 발달과 정서적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인기를 대상으로 한 발달이론에 따르면, 개인의 발달적 욕구가 지속적으로 억압될 때, 그 개인은 자기효능감과 삶의 만족감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정서적 소진(번아웃)과 정체성 혼란이라는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매슬로와 에릭슨의 이론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매슬로(Maslow)의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 욕구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은 인간의 욕구가 생존을 위한 선천적 본능에서 출발하여 사회적·심리적 발달 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을 추구하게 되는 위계적 구조임을 설명합니다. 이 단계에서 취미나 창의적 활동을 통한 성취는 자기실현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의적 활동이란, 예를 들어 그림, 글쓰기, 음악, 공예 등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표현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때때로 이러한 성취의 욕구가 생존에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보다 앞서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사람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초과해서라도 성취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할 만큼, 자기실현이 인간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취 욕구를 충족시켜줄 취미 활동을 미루거나 포기할 때 느끼는 허전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매슬로에 따르면, 이는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제한될 때 나타나는 존재론적 상실감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자기실현 욕구는 외부에서의 인정보다는 내적 만족과 의미에 좀 더 초점이 있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한 취미 활동은 무엇보다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여기서 중요한 건 취미 활동을 통한 자기실현이 부모 역할과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양육자가 자신만의 취미를 통해 자기실현을 이루면, 육아에 필요한 정서적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육아에도 지속 가능한 의미와 활력을 부여할 수 있게 되어서 부모 역할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에릭슨(Erikson)의 성인초기 발달 과제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나서 노년까지 8단계의 발달 시기를 거칩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발달에 필요한 과제를 해결하며 점차 성숙해지죠. 어린 아이를 육아중인 주양육자 대부분이 속한 20~40대 초반, 즉 성인초기의 핵심 과제는 ‘친밀감을 이루되,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친밀감‘은 견고한 자기 정체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런데 만약 (불가피하게) 양육자의 역할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어 나만을 위한 시간을 포기하게 되면, 주양육자 역할 외의 자아를 약화시켜 정체성 상실을 유발합니다. 심지어는 이미 맺고 있는 친밀한 관계(배우자와 자녀와의 관계 등) 속에서도 정서적 고립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즉, 이런 심리적 위기 상황이 내가 달성해야 할 발달 과제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지요.
이때 ‘나’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취미 활동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취미는 육아 외의 내가 가진 개인적 능력과 관심에 몰입하게 해주어 ‘나’라는 정체성을 견고하게 해주기 때문이죠. 육아 스트레스가 풀리는 건 일석이조입니다. ✌️🥹
⚠️ 따라서 취미를 가진다는 것은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 한 사람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발달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양육자 이전의 ‘나’라는 독립적인 자아를 지켜내어 지금 시기의 심리적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고, 건강한 친밀감 형성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발달적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두 이론을 요약해보자면, 주양육자가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경향성일 뿐만 아니라 성인기 여전히 성장하는 인간으로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발달상의 과제를 충족시키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 취미 시간을 단순한 여가나 휴식시간이라 생각하기 보다는, 정서적 소진(번아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중요한 심리적 기반이라 생각을 전환하고,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취미는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몰아보려고 꾹 참았던 웹툰을 보는 시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순간, 좋아하는 음악에 잠시 몸을 맡기는 여유도 충분한 자기표현이자 회복의 시간이 됩니다.
작은 실천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하루 중 짧은 시간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일정표에 표시해 두거나, 가족과 역할 분담을 구체적으로 협의해 내 시간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시간을 할당하고 역할의 경계를 세우는 노력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혹시 마음 한쪽에서 ‘내가 이런 걸 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기억하세요. 내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합니다.
부모라는 역할은 직장과 달리 그만둘 수 없고, 무엇보다 개인적인 영역과 역할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도 하죠. 이러저러한 요구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이야!😭📢” 교육학적으로, 주양육자들이 더이상 육아와 취미를 취사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